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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공정위, 대기업 일감몰아주기 ‘핀셋조사’

삼성·현대차·SK·LG 등 대기업 군기잡기용 조사 우려도

공정거래위원회가 현대글로비스의 부당 내부거래 여부를 살피기 위해 현장조사에 들어갔다. 현대글로비스는 현대차그룹 계열의 물류회사다. 공정위가 현대글로비스의 부당거래를 조사하지만 정작 칼끝은 정의선 현대기아차그룹 총괄부회장을 향하고 있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공정위가 대기업 물류업체에 대해 조사권을 발동한 것은 지난 3월 LG그룹의 물류를 책임지는 판토스에 이어 두번째다. 공정위가 대기업 총수일가 지분이 많고 내부거래 비중이 높은 급식·시스템통합(SI)·물류 업체를 콕 집어 핀셋조사에 들어갔기 때문이다.

 

공정위가 문재인 정부 3년차를 맞아 ‘대기업 군기잡기’에 들어간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공정위 기업집단국은 최근 조사관 10여 명을 서울 테헤란로 현대글로비스 본사에 파견해 현장조사를 벌였다. 3월 판토스를 조사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공정위가 들여다보는 건 현대·기아자동차가 자동차 운반물량 등을 현대글로비스에 부당하게 몰아줬는지 여부다. 정의선 수석총괄부회장 등 총수 일가가 지분 29.9%를 보유한 현대글로비스가 더 많은 수익을 내도록 계열사들이 운송비를 후하게 쳐줬는지 따져보겠다는 것이다.

 

현대글로비스가 비싸게 따낸 계열사 물량으로 ‘체력’을 키운 뒤 일반 운송물량을 수주할 때 낮은 가격을 써내는 식으로 시장점유율을 끌어올렸는지도 꼼꼼히 살펴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관계자는 “현대글로비스의 내부거래 비중은 65% 안팎이지만 국내 시장만 놓고 보면 20%에 불과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내부거래 비중을 낮추라는 건 현대·기아차의 해외 운송물량을 외국 물류업체에 내주라는 의미”라고 말했다.

 

현대차그룹이 현대글로비스와 현대제철 등 계열사들을 동원해 사돈기업인 삼표를 부당 지원했는지도 점검 대상이다. 정의선 현대기아차차그룹 총괄부회장의 부인 정지선 씨는 삼표그룹 정도원 회장의 장녀이기 때문이다. 앞서 시민단체들은 최근 현대글로비스와 삼표가 원자재 납품 거래를 하면서 실질적 역할없이 중간에서 수수료를 받는 '통행세 챙기기'를 일삼는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재계는 공정위가 집중적으로 들여다보는 업종에 주목하고 있다. 다른 계열사에 비해 총수 일가 지분율이 높고 내부거래 비중도 큰 물류·급식·SI 분야를 타깃으로 잡았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물류·급식·SI 업체는 총수 지분이 많지만 기업 규모가 작아 공정위로선 조사에 따른 업무부담을 최소화하면서도 대기업 압박 효과는 극대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공정위는 작년 6월 김상조 위원장이 “총수 일가가 핵심 사업과 관련 없는 계열사 지분을 보유하고 일감을 몰아주는 행태가 반복돼선 안 된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뒤 관련업체들을 줄줄이 조사하고 있다.

 

공정위의 첫 타깃은 삼성그룹 급식 계열사인 삼성웰스토리다. 웰스토리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등 총수 일가가 30% 이상 지분을 가진 삼성물산이 지분 100%를 보유한 회사다. 공정위는 최근 삼성 계열사들이 총수 일가가 삼성물산으로부터 받는 배당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웰스토리를 지원했는지 들여다봤다.

 

공정위는 삼성의 부당 내부거래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최근 LG그룹과 SK그룹의 급식사업을 책임지는 아워홈과 SK하이스텍에 대해 참고인 조사를 진행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SI 분야와 관련해선 최근 실태조사에 들어갔다. 대기업 계열의 SI업체 50여 곳을 상대로 △내부거래 비중 △내부거래에서 수의계약이 차지하는 비중 등이 포함된 질의서를 발송한 것으로 전해졌다.

 

‘대기업집단 계열사와 소속 SI업체간 내부시장 고착화 원인 분석 및 개선방안 마련’이란 주제의 연구용역도 발주했다. 재계 일각에선 공정위가 SI 업체 분석을 끝내는 하반기 또는 내년쯤 본격적인 군기잡기에 나서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